규제에 가로막힌 한국의 혁신: ‘포지티브(Positive)’의 덫에 걸린 대한민국 기술 발전

대한민국 혁신가들이 매일같이 마주하는 가장 큰 벽은 법률의 규제 방식이다. 흔히 규제가 지나치게 촘촘하고 강하다는 뜻에서 이를 ‘네거티브(Negative) 식 법률’이라 부르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개념적 오해다. 신산업 생태계의 숨통을 쥐고 흔드는 진짜 주범은 법에 명시된 항목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원칙적으로 불법 간주하는 철저한 ‘포지티브(Positive) 규제’ 체계다.

“안 되는 것만 빼고 다 하라”는 글로벌 스탠다드(네거티브)와 반대로, 한국의 법체계는 “안 적혀 있으면 꿈도 꾸지 마라”는 기조를 유지한다. 이 거대한 관료주의적 관성이 수년 동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토종 신기술들을 시장 진입 직전에 사장시키는 잔혹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술 주권이 흔들리는 근본적인 원인은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구시대적 법률의 틀에 갇힌 시스템에 있다.

‘원칙적 금지’가 만든 혁신의 무덤

포지티브 규제 환경에서 법률이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발생하는 공백은 고스란히 기업의 재앙이 된다. AI, 블록체인, 자율주행, 우주항공 등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첨단 분야의 신기술이 등장해도, 현행법에 이를 담을 만한 법적 정의나 인허가 기준이 없으면 해당 기술은 즉시 ‘불법’의 회색지대에 방치된다.

여기서 관료 조직의 고질적인 보신주의가 결합한다. 공무원들은 감사원의 감사와 사후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여 법령에 명확한 근거 문구가 없는 기술이나 서비스의 시장 진입을 원천 차단하거나 유보한다. 혁신가들은 실험실에서 밤을 새우며 기술 개발에 성공하고도, 이를 시장에 선보이기 위해 수년 동안 정부 부처의 칸막이 행정을 전전하며 허가를 애걸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혁신의 무덤은 기술의 한계가 아닌, 법조문 한 줄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타다의 비극과 멈춰 선 모빌리티 혁신

한국형 포지티브 규제와 기득권 보호주의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준 첫 번째 상징적 사건이 바로 ‘타다’ 사태다. 타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의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는 운전자 알선을 허용한다’는 예외 조항을 합법적으로 파고들어 스마트폰 기반의 혁신적 승차 공유 서비스를 선보였다. 소비자들은 열광했고 출시 짧은 시간 만에 수백만 명의 가입자를 모으며 모빌리티 혁신의 기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기득권인 전통 택시 업계의 거센 반발과 물리적 충돌이 이어지자, 정치권은 혁신의 가치를 전면 부인했다. 국회는 예외 조항 자체를 삭제하여 타다의 비즈니스 모델을 통째로 불법화하는 이른바 ‘타다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법률에 명시된 전통적 운송 사업의 틀을 벗어난 모빌리티 실험은 그렇게 한국에서 종말을 고했다. 이 사건은 국내 스타트업 진영 전체에 “법을 지키며 혁신을 해도 국회가 법을 바꿔서 기업을 죽일 수 있다”는 강력한 트라우마와 사법 리스크 신호를 각인시켰다.

원격의료의 문제, 세계 1위 기술을 두고도 갈 곳 없는 환자들

대한민국은 인구당 스마트폰 보급률,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과 시스템을 보유하고도 ‘원격의료(비대면 진료)’ 분야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뒤처진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현행 의료법이 의사와 환자 간의 비대면 진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고도의 포지티브 규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사태 당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이 짧은 기회를 틈타 원격의료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누적 수천만 건의 진료를 안전하게 소화하며 기술적 안전성과 편의성을 증명해 냈다. 그러나 감염병 위기 단계가 하향되자마자 이익단체의 압박에 밀려 비대면 진료의 초진 범위가 극도로 제한되고 약 배송이 원천 금지되는 등 사실상의 퇴출 수순을 밟았다. 최근에는 플랫폼의 비즈니스 구조를 제한하는 일명 ‘닥터나우 방지법’까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는 등 규제의 칼바람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환자들이 누릴 수 있었던 의료 접근성과 고부가가치 헬스케어 데이터 주권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하늘길 막힌 UAM과 드론, 규제 청정국으로 망명하는 기업들

국내 드론 및 도심항공교통(UAM) 기술진들의 역량은 글로벌 시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비상하기도 전에 날개를 꺾은 것은 촘촘하게 얽힌 군사분계선 특수성과 안전 중심의 행정 규제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부분의 상공이 비행 금지 구역이나 제한 구역으로 묶여 있는 상황에서, 신형 드론을 야외에서 한 번 띄우기 위해서는 수 주 전부터 수만 가지 서류를 작성해 군과 국토교통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야간 비행, 고고도 비행, 비가시권 비행 등 인공지능 기반 드론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실증 실험들은 사사건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규제 서류를 통과하기 위해 반년을 대기하는 동안 해외 경쟁사들은 수천 시간의 비행 데이터를 쌓으며 격차를 벌렸다. 견디다 못한 국내 유망 드론 스타트업들과 연구소들이 비행 규제가 없고 넓은 대지를 제공하는 미국, 호주, 중동 등지로 연구 기지와 테스트베드를 아예 통째로 이전하는 ‘기술 망명’ 현상이 속출하게 된 배경이다.

중국의 ‘선(先)허용 후(後)규제’가 무서운 이유

한국의 기업들이 규제의 대못을 뽑아달라며 정부 청사 앞에서 고사를 지내고 있을 때, 이웃 나라 중국은 철저한 네거티브 규제 철학을 발판 삼아 신산업 생태계를 무서운 속도로 재편했다. 중국 정부가 신기술을 대하는 대원칙은 ‘선허용 후규제(先許容 後規制)’다. 일단 시장에 기술을 출시해 마음껏 운영하게 둔 뒤, 추후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 비로소 맞춤형 규제를 도입해 보완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폭적인 규제 환경 속에서 글로벌 상업용 드론 시장의 70% 이상을 독점한 공룡 기업 ‘DJI’가 탄생할 수 있었다. 자율주행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바이두를 비롯한 중국의 첨단 기업들은 상하이, 선전, 베이징 등 거대 대도시 한복판에서 안전요원도 타지 않은 무인 로보택시 수백 대를 대낮에 정식 운행하며 매일 수백만 기가바이트의 도심 주행 데이터를 흡수하고 있다. 한국이 가이드라인 제정을 두고 부처 간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사이, 중국은 이미 규제 없는 벌판에서 세계 표준을 정립해 나가고 있다.

미국의 ‘규제 샌드박스’와 실리콘밸리의 질주

미국 기술 혁신의 심장인 실리콘밸리가 멈추지 않고 질주할 수 있는 비결은 미국 고유의 유연한 커먼로(Common Law, 영미법) 체계와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에 있다. 미국은 신기술이 출현했을 때 기존의 낡은 법적 잣대로 이를 재단하여 가두려 하지 않는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기업들이 법적 불확실성 없이 마음껏 아이디어를 검증할 수 있도록 유연한 규제 유예 제도와 넓은 운동장을 제공한다.

오픈AI의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 혁명 과정에서 데이터 저작권이나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도, 미국 정부는 서비스 자체를 막아서기보다 민간 중심의 자율적 가이드라인 수립을 유도하며 기술 고도화 시간을 벌어주었다. 테슬라가 완벽하지 않은 자율주행 시스템인 FSD(Full Self-Driving) 베타 버전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배포해 수억 마일의 실제 도로 주행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환경 역시 민간의 자율성과 책임 시스템을 신뢰하는 네거티브식 법체계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무늬만 혁신인 ‘규제 샌드박스’의 한계와 피로감

국내에서도 포지티브 규제가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승인된 사업에 한해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해 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현장의 스타트업들이 느끼는 규제 샌드박스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자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샌드박스 임시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소명 서류와 심사 과정 자체가 극도로 복잡하여 법무 팀이 없는 영세 스타트업은 시도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유효기간이다. 어렵사리 2년의 임시 허가를 받아 사업을 시작해도, 그 기간이 끝나갈 때까지 국회와 부처는 관련 법령 정비를 미뤄두기 일쑤다.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 기업은 사업 중단 위기에 직면하며 투자자들은 리스크를 우려해 자금을 회수한다. 규제 유예 기간 동안 대기업이나 기존 이익집단의 반발에 부딪혀 제대로 된 실증조차 못 해보고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결국 ‘ 혁신을 위한 샌드박스’가 아니라 ‘규제를 증명하기 위한 청문회’로 변질되었다는 피로감이 팽배하다.

관료주의와 기득권 카르텔이 결합할 때 생기는 일

한국 사회에서 이토록 경직된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이 좀처럼 깨지지 않고 공고하게 유지되는 배경에는 관료사회의 극단적인 보신주의와 기존 이익집단의 끈끈한 ‘기득권 카르텔’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이나 효율적인 기술이 도입되면 자신들의 기존 밥그릇과 업역을 위협받는 이익단체들은 강력한 표 결집력과 조직력을 무기로 정치권을 전방위로 압박한다. 표심에 극도로 민감한 정치권은 혁신의 가치와 국가 미래 경쟁력 대신 기득권의 손을 들어주며 규제 완화 법안을 서랍 속에 방치하거나,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는 역주행 입법을 단행한다.

여기에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이 기름을 붓는다. 하나의 신기술 서비스가 출시되려면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 국방부 등 여러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관료들은 타 부처와의 책임 소재 공방 속에서 핑퐁 게임을 벌이며 인허가를 차일피일 미룬다. 새로운 융합 기술이 등장해도 “우리 부처 소관 법령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며 고개를 젓는 사이, 혁신의 골든타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기업의 자금줄은 바짝 말라붙는다.

참다못한 탈출: 한국을 떠나는 스타트업과 ‘플립(Flip)’의 확산

규제의 사슬을 견디다 못한 대한민국 스타트업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은 결국 한국이라는 시장 자체를 포기하고 국경을 넘는 것이다. 창업 초기부터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국내에 있던 본사를 해외 법인의 자회사로 뒤집는 이른바 ‘플립(Flip·본사 이전)’ 현상이 벤처 생태계 전반에서 위험 수위를 넘어서며 가속화되고 있다.

스타트업 관련 업계 통계에 따르면 해외로 본사를 완전히 옮긴 한국계 스타트업의 수는 지난 10년 새 6배 이상 급증했다. 이들이 한국을 등지고 미국 실리콘밸리나 싱가포르, 일본 등으로 향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글로벌 시장 진출 목적을 넘어, 국내의 숨 막히는 포지티브 규제 리스크를 전면 회피하고 글로벌 벤처캐피털(VC)로부터 법적 제약 없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한국 국내에서 블록체인 및 가상자산 관련 비즈니스를 준비하던 수많은 크립토 기업들이 암호화폐 공개(ICO) 전면 금지 규제를 피해 싱가포르와 스위스로 본사를 이전했다. 혁신적인 에듀테크 기업이나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AI 진단 솔루션을 개발한 유망 기업들도 국내 규제 장벽에 막혀 사업이 불가능해지자 미국으로 플립을 감행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의 이전을 넘어, 한국이 막대한 정책 자금과 교육 인프라를 투입해 길러낸 최고급 인재들과 미래의 세원(稅源), 그리고 국가의 기술 성장 동력이 고스란히 해외로 유출되는 심각한 ‘부(富)와 기술의 이민’ 사태다.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네거티브 체제로의 전면 전환 필요성

4차 산업혁명과 초거대 인공지능이 이끄는 현재의 글로벌 기술 주기는 과거 산업화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축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과거 정부가 앞에서 끌고 민간이 뒤에서 밀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시대의 유물인 포지티브 규제 방식으로는, 초단위로 진화하는 기술 패권 전쟁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규제가 기술의 진화를 규정하려 드는 순간 그 국가는 영원한 기술 종속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제 대한민국이 살길은 단 하나뿐이다. 국가 안보, 국민의 생명과 안전, 환경 파괴 등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최소한의 영역에 대해서만 명확하고 철저한 ‘레드라인’ 가이드라인을 규정하고, 그 외의 모든 영역에서는 민간이 제약 없이 뛰어놀 수 있도록 보장하는 ‘진짜 네거티브 규제 체계’로 법적 패러다임을 전면 대전환해야 한다. 사후 책임은 엄격하게 묻되 사전 진입은 무조건 허용하는 유연함만이 국경 없는 기술 전쟁 시대에 인재와 자본을 다시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열쇠다. 법이 기술의 발목을 잡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참고자료

한국 전라북도연구개발특구 지역중심 신기술의 규제 샌드박스 연구 보고서
한국경영학회 – 글로벌 융복합 핀테크 혁신과 국내 금융규제에 대한 사례연구
한국직업능력연구원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직업능력개발 대응 방향 및 규제 혁신
서울대학교 공법학연구소 – 기술규제, 사례와 정책적 시사점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 신기술 활용 서비스 시장출시와 규제 혁신법령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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