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의 사유화: 호르무즈발 ‘해상 통행료’가 뒤흔든 글로벌 물류의 종말
지난 수십 년간 인류가 누려온 번영의 기저에는 ‘바다는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평화적인 목적의 선박은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다’는 무해통항권(Right of Innocent Passage)의 원칙이 있었다. 1982년 채택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연안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라 할지라도 외국 선박의 통행을 방해하거나, 특히 통과한다는 사실만으로 통행료를 징수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해 왔다. 이는 글로벌 분업 체계와 자유 무역을 가능하게 한 ‘공공재로서의 바다’를 상징하는 법적 토대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이 견고했던 국제법적 질서는 이란의 실효적 지배 논리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경찰’로서의 비용 부담을 이유로 해상 통제력을 서서히 거둬들이면서, 국제법은 강제력을 잃은 종이 조각으로 전락했다. 과거에는 미 해군 함정의 존재만으로도 억제되었던 연안국들의 주권 주장이 이제는 ‘통행세’라는 경제적 갈취의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인류가 수백 년간 쌓아온 해양 자유의 역사가 퇴보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란의 위험한 논리: “안보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와 전략적 이중 잣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를 정당화하며 내세운 논리는 매우 치밀하며, 국제사회의 도덕적 약점을 파고드는 위협적인 성격을 띤다. 이란은 자신들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서명만 했을 뿐 최종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협약의 ‘통행료 금지’ 조항에 구속될 이유가 없다고 강변한다. 이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국 해군의 치안 유지비, 해양 오염 방지 비용, 구조 활동 등에 막대한 국가 예산이 소요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해협 통과를 인류 공통의 ‘권리’가 아닌 이란이 제공하는 ‘유료 보안 서비스’로 재정의했다.
여기에는 이란만의 독특한 ‘비대칭적 상호주의’ 계산이 깔려 있다. 통상적으로 국제법을 무시하면 자국 선박도 타국 영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란은 이미 서방의 최고조 제재로 인해 자국 선박들이 전 세계 주요 항구에서 퇴출당한 상태다. 즉, “우리는 이미 잃을 것이 없으니, 너희가 입을 100의 타격을 위해 우리의 10의 피해는 감수하겠다”는 이른바 ‘논개 작전’식 배수진을 친 것이다. 여기에 미국 역시 UNCLOS를 최종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역공의 빌미로 삼으며, 국제법적 명분 싸움을 힘의 논리로 치환해버리는 영악함을 보인다.
특히 이란은 서방의 경제 제재로 자국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국 영해를 지나는 선박들이 막대한 상업적 이익을 챙기는 것은 극도로 불평등하다는 감성적 호소까지 덧붙인다. 이들은 통행료를 거부하는 선박에 대해 ‘환경 검사’나 ‘서류 미비’를 구실로 나포하거나 통행을 지연시키는 실력 행사를 병행한다. 동시에 중국이나 러시아 등 우호국 선박에는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국제적 고립을 피하며, 지정학적 요충지를 점유한 국가가 어떻게 국제법을 무력화하고 이를 ‘경제적 무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악의 선례를 남기고 있다.
석유를 인질로 잡은 톨게이트: 호르무즈와 홍해의 동반 유료화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유료화된다는 것은 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이란의 손아귀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이란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통행료의 액수나 결제 수단 – 예를 들면 리알화 또는 위안화 결제 강제 – 을 통해 적대국과 우호국을 선별하고 있다. 이는 석유 가격에 직접적인 ‘통행료 프리미엄’을 붙여 전 세계 물가를 좌우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이 현상은 호르무즈에 머물지 않고 홍해로 즉각 전염되었다.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인근 아프리카 연안국들은 이란의 방식을 모방하여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 ‘항로 안전 보장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호르무즈에서 한 번, 홍해에서 또 한 번 통행료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해운사들은 감당할 수 없는 비용 압박에 직면했다. 결국 ‘석유의 길’은 이제 거대한 현금 인출기로 변질되었으며, 이는 에너지 안보를 넘어 글로벌 경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핵폭탄급 변수가 되었다.
지중해와 대서양의 불안: 수에즈 운하의 몰락과 각자도생
호르무즈와 홍해의 유료화는 필연적으로 수에즈 운하의 가치를 추락시키고 있다. 수에즈 운하는 인공 수로로서 원래 통행료를 받지만, 그 앞뒤 길목인 해협들에서 추가적인 사설 통행료가 발생하면서 운하 이용의 메리트가 사라진 것이다. 해운사들은 이제 비싼 통행료를 세 번(호르무즈-홍해-수에즈) 내느니, 차라리 15일이 더 걸리더라도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도는 경로를 표준 항로로 채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집트는 국가 재정의 핵심인 운하 수입이 급감하며 경제 붕괴 위기에 처했고, 이는 지중해 연안의 정세 불안으로 번지고 있다. 또한, 지중해 입구인 지브롤터 해협에서도 연안국들이 ‘환경 관리’를 명목으로 유사한 조치를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대서양과 인도양을 잇는 전통적인 해상 실크로드는 사실상 붕괴 직전이다. 바다 위에는 이제 ‘정해진 규칙’이 사라지고, 각 해역을 장악한 세력과 개별적으로 협상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아시아 해상로의 위기: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의 ‘유료화’ 먹구름
이러한 흐름은 아시아의 생명선인 남중국해와 말라카 해협으로 무섭게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특히 남중국해의 대부분을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중국에 이란의 방식은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중국이 만약 자국이 건설한 인공섬 주변 해역을 통과하는 선박에 ‘시설 이용료’나 ‘안전 분담금’을 요구한다면, 한국과 일본의 수출입 물동량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말라카 해협을 관리하는 동남아 국가들 역시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터뜨릴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배들이 지나가며 내뿜는 오염물질과 해적 방지 비용을 왜 자신들만 부담해야 하느냐는 논리다. 이란이 뚫어놓은 ‘통행료’라는 구멍은 아시아 국가들에 “우리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으며, 이는 동북아 제조 경제권에 막대한 비용 상승 압박을 가하고 있다. 바다는 이제 평화로운 교역로가 아니라, 통과할 때마다 돈을 뜯기는 ‘해상 지뢰밭’으로 변모 중이다.
국가별 반응: 명분과 실리 사이의 처절한 각자도생
현재 이란과 후티 반군의 통행료 징수에 대응하는 세계 각국의 모습은 국제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과거처럼 미국의 주도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해상 안보 체제는 사라졌으며, 각국은 자국의 물류 마비를 막기 위해 극도로 파편화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서방: 미국은 공식적으로 “국제법에 반하는 불법적 갈취”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군사력 투사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이미 ‘다중 전선’에 군사적 역량을 소진한 미국으로서는, 호르무즈와 홍해를 동시에 24시간 엄호할 여력이 부족하다. 특히 선거철과 맞물린 내부 정치 상황은 미군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충돌을 꺼리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항행의 자유’라는 구호만 외칠 뿐 실효적인 저지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영국 등 유럽 국가들 또한 자국의 물가 폭등을 우려하면서도, 군사적 대응보다는 희망봉 우회를 독려하는 소극적인 방어 기제에 머물러 있다.
중국과 러시아: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이 위기를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이들은 공식적인 비난 대열에서 빠진 채, 이란 및 후티 측과 은밀한 개별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중국과 러시아 국적 선박이거나 이들이 보증하는 화물에 대해서는 ‘통행료 면제’ 혹은 ‘파격적 할인’이라는 특혜를 이끌어냈다. 이는 미국 중심의 안보 질서를 따르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을 전 세계에 과시하는 효과를 냈으며, 글로벌 해운사들이 서방의 보호 대신 중국의 중재를 요청하게 만드는 기묘한 역전 현상을 낳고 있다.
한국과 일본: 에너지의 거의 전량을 해상 수송에 의존하는 한국과 일본은 가장 치명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다. 초기에는 미국의 대응을 신뢰하며 관망했으나, 통행료 징수가 장기화되자 내부적으로 심각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해운 업계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일단 이란에 돈을 내고서라도 배를 띄워야 한다”는 현실론을 내세우고 있고, 정부는 국제법 원칙과 자국 선박 보호라는 명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켜주지 않는 바다라면 차라리 독자적인 해상 자위대 투입이나 이란과의 개별적 통행료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자강론과 패배주의가 뒤섞인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산유국 및 연안국: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등 주변 산유국들은 이란의 행보를 주권 침해로 간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다의 가치가 ‘수익화’되는 현상을 복잡한 심경으로 주시하고 있다. 이집트의 경우 수에즈 운하 수입이 급감하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나, 반대로 지부티나 소말리아 같은 빈곤 연안국들은 후티의 성공 사례를 보며 자국 영해 통과 선박에 대한 ‘환경 분담금’ 명목의 통행료 신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바다를 공공재가 아닌 ‘임대 가능한 영토’로 보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력해진 국제기구: 유엔(UN)과 국제해사기구(IMO)의 한계
국제 해상 질서를 중재해야 할 국제기구들은 현재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상임이사국 간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규탄하는 결의안조차 채택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이다. 국제해사기구(IMO) 역시 기술적인 권고안만 내놓을 뿐, 주권 국가의 영해 내 행위를 강제할 법적 수단이 없다.
이란은 국제기구의 항의에 대해 “이것은 상업적 서비스 계약이지 국제법 위반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맞서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국제기구가 제공하던 법적 울타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해군력의 크기’와 ‘외교적 협상력’만이 남게 되었다. 이는 국제사회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쌓아온 다자주의 안보 체제가 해상에서부터 완전히 붕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해상 봉건주의의 고착화와 물가 대폭등의 시대
앞으로의 전망은 매우 어둡다. 이란의 통행료 징수는 단기적인 소동으로 끝나지 않고, 전 세계 주요 해협으로 확산되어 하나의 ‘새로운 표준(New Normal)’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 세계적인 물류 비용의 구조적 상승을 가져오며, 저물가·고성장의 글로벌 분업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미래의 해상로는 돈을 낼 수 있는 강대국과 그 우호국들만이 안전하게 지나다니는 ‘전용 도로’와, 위험과 고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나머지 국가들의 길’로 분열될 것이다. 바다의 사유화는 식량, 에너지, 원자재 가격의 상시적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며, 각국은 해상 통로 확보를 위해 앞다투어 군비 경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 ‘자유로운 바다’라는 인류 공동의 자산이 힘 있는 자들의 ‘수익 사업’으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