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로켓 발사체의 역사 — 군용 미사일에서 우주 발사체로
한국이 로켓을 발사한다는 사실은 202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많은 국민에게 생소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이 ‘로켓 기술’을 발전시켜온 과정은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일찍이 우주 탐사를 꿈꾸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는 우주로 위성을 쏘아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 필요성에 따른 개발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냉전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1970년대 초, 한국은 안보 환경의 불안 속에서 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한 자주국방 능력 확보에 착수하며 로켓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1970년대 — 백곰과 미사일 기술의 출발점
1970년대 초반, 베트남전과 닉슨 독트린의 여파로 주한미군 감축이 거론되면서 한국의 안보 불안은 극도로 높아졌다. 정부는 ‘자주국방’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무기체계 개발에 착수했고, 그 중심에는 미사일이 있었다. 이를 위해 1971년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설립되었고, 한국 최초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 사업이 시작되었다.
이 사업의 결과로 미국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기반으로 개발된 백곰 미사일이 탄생했다.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최대 사거리 약 180km, 고체 연료를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우주나 과학 기술의 발전보다, 당장 휴전선 위의 북한 공격에 대응할 전략 억지력 확보가 최우선 과제였다.
비록 완전한 국산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 시기에 축적된 추진체 제작, 유도 제어, 구조 설계 경험은 훗날 로켓 발사체 개발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당시 한미 관계는 미사일 기술 확산에 매우 민감했고, 미국은 한미 미사일 지침을 통해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강력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1979년 — 한미 미사일 지침 체결과 기술의 족쇄
1979년 한국과 미국은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을 제한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로 인해 한국이 개발할 수 있는 미사일의 사거리는 180km, 탄두 중량은 500kg 이하로 제한되었다. 이 제한은 군사적 용도뿐 아니라 민간용 우주발사체 개발에도 커다란 제약을 주었다.
그 이유는 로켓 발사체와 탄도미사일이 기술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용도는 다르지만 추진체, 단 분리 기술, 연료 시스템 등 핵심 기술은 상당 부분 겹치며, 한국이 미사일 기술을 우주 발사체 개발로 ‘우회 발전’시키는 것을 미국은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DD를 비롯한 연구진은 소규모 연구를 지속하며 점진적으로 기술을 축적했다. 대형 로켓이 아닌 소형 고체 추진체 개발로 이어졌고, 이는 훗날 우주발사체 개발 초기 단계의 토대가 되었다.
1990년대 — 제한 속의 기술 축적과 우주 개발의 꿈
냉전이 종식되고 한국의 경제력이 급격히 성장하던 1990년대 초, 한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우주 개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992년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영국 서리대학과 협력해 개발하고 아리안 로켓에 실어 발사함으로써, 한국은 첫 인공위성을 보유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로켓 추진체 실험도 소규모로 시작됐다. 1989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설립과 함께, 미사일과 우주 발사체 개발은 군사용과는 별도로 민간 분야에서 추진되었다. 고체 연료 로켓 실험을 통해 단거리 소형 발사체 기술을 축적했고, 이후 액체 추진 로켓 연구로 발전할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한미 미사일 지침은 여전히 사거리와 발사체 크기, 추진력, 궤도 투입 능력을 제한하여, 한국의 우주 개발은 발사체보다는 위성 제작 중심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발사체는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해야 했다.
2000년대 — 나로호와 러시아의 협력
2000년대 들어 한국 정부는 본격적으로 독자 발사체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기술적·시간적 제약으로 인해 러시아와의 국제 협력을 통한 기술 제휴를 선택했다.
2002년 ‘한국형 우주발사체(KSLV-I)’ 개발 사업이 시작되었고,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와 협력해 1단 추진체를 러시아에서 공급받는 한편, 한국은 2단 추진체와 위성 탑재체, 발사장 건설 등을 담당하여 나로호(NARO-1)를 개발했다.
나로호는 2009년 첫 발사에서는 궤도 진입에 실패했고, 2010년 2차 발사 역시 폭발로 이어졌다. 그러나 2013년 세 번째 도전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은 국내 발사장에서 자체 발사체를 쏘아 올려 위성을 궤도에 투입한 첫 국가가 되었다. 비록 1단 로켓이 러시아산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자립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2단 발사체 제작, 조립, 발사 운용 경험을 확보한 것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2010년대 — 누리호 개발과 자립의 길
나로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은 완전 독자 기술로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010년 시작된 KSLV-II, 즉 누리호(NURI) 개발 사업은12년에 걸쳐 추진되었다.
누리호는 75톤급 액체엔진 4기를 묶은 1단 추진체, 7톤급 2단 추진체, 3단 소형 추진체로 구성된 3단 액체로켓으로 설계되었다. 한국은 대형 액체 추진 엔진을 독자 개발하고, 연소 안정성, 추력 제어, 다단 분리 등 고난도 기술을 확보하며 수백 차례 연소 시험과 실패를 반복했다. 발사체 제작을 위한 국내 산업 생태계도 빠르게 성장했다.
2021년 첫 발사에서는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올리지 못했지만, 2022년 2차 발사에서 성능 검증 위성을 정상 궤도에 투입하며 자체 발사체로 실용 위성을 궤도에 올린 7번째 국가가 되었다.
2020년대 — 미사일 지침 철폐와 기술 자율화
2021년 5월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한국 로켓 발사체 개발의 걸림돌이던 한미 미사일 지침을 전면 철폐했다. 이를 통해 사거리 제한이 사라지고, 한국은 발사체 크기와 추진력에 제약 없이 기술 개발이 가능해졌다.
이는 우주 발사체 개발에도 큰 파급력을 가져왔다. 한국은 이제 사거리 800km의 제한을 의식하지 않고 대형 추진체를 개발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발사체(KSLV-III) 계획도 본격 추진 중이다. 군사용 미사일 역시 사거리와 탄두 중량이 증대된 신형 미사일이 속속 선보이게 되었다.
한국은 외국 기술을 단순히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흡수하고 국산화하는 과정을 거쳐 누리호를 개발했으며, 이러한 접근이 단기간 기술 축적의 핵심 요인이 되었다.
민간으로 확장되는 로켓의 미래
로켓 발사체는 이제 정부 기관만의 영역을 넘어 민간 우주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사업의 운영 주체로 전환 중이며, 페리지 에어로스페이스, 인스페이스 같은 스타트업들도 소형 고체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다. 정부 역시 2020년대 중반까지 민간이 우주발사체를 운영하고 판매할 수 있는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미 미사일 지침 철폐는 민간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며,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의 확장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국의 로켓 발사체 역사는 미사일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우주로 향하고 있다. 1970년대 백곰 미사일로 시작된 여정은 2000년대 나로호를 통한 국제 협력의 첫걸음을 거쳐, 2020년대 누리호를 통한 기술 자립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기술 발전뿐 아니라 국제적, 정치적 제약 극복, 기술 자립 달성, 국가 전략의 안보에서 산업과 과학기술로 확장이라는 정책적 진화가 이루어졌다. 이제 한국은 차세대 발사체 개발과 재사용 로켓 기술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참고자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