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노인복지 — 더 이상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되는 사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다. 20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고, 2035년에는 3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삶의 질은 결코 함께 오르지 않았다.

노년층의 빈곤율은 OECD 평균의 세 배를 넘고, 노인 셋 중 한 명이 상대적 빈곤 상태에 있다. 국민연금 수급액은 월평균 60만 원 수준에 그치며, 기초연금까지 더해도 최소한의 생활비조차 충족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 속에서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길거리로 나선다. 폐지를 줍거나,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거나, 재래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한다. 거리에서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모으는 노인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복지정책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풍경이다.

 

한국의 노인복지 현실 — 제도는 있으나 삶을 지탱하지 못한다

한국은 겉으로는 다양한 노인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다. 기초연금, 장기요양보험, 기초생활보장, 공공일자리, 주거급여 등 제도적 장치등이 존재하고는 있으나 문제는 ‘있어도 닿지 않는 복지’다. 제도의 설계가 현실의 노인문제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초연금은 30만 원 안팎으로, 단독세대의 월평균 생활비(약120만 원)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전체 노인의 10% 남짓에 불과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다. 자녀가 있으면, 그 자녀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에 포함돼 부모는 복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녀가 실질적 부양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행정상 ‘부양받는 사람’으로 기록되어 실제로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복지 사각지대가 벌어지고,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생긴다.

장기요양보험도 마찬가지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늘어나는데, 요양시설은 부족하고, 인력은 열악하다. 돌봄 서비스는 지역마다 격차가 크고, 재가 요양을 선택할 경우 돌봄의 질이 불안정하다보니 결국 요양시설은 대기자가 넘치고, 집에 남겨진 노인들은 고립된다.

의료체계 또한 병원 중심이다. 퇴원 후 지역사회로 복귀할 때 연결고리가 끊겨, 독거노인들이 다시 병원으로 실려가는 일이 반복된다. 복지, 의료, 주거가 분절된 시스템 안에서 노인은 한 명의 ‘환자’이자 ‘행정 대상자’로만 취급된다.

 

일본의 노인복지 — ‘지역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

한국보다 20년 앞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은, 그만큼 일찍 제도를 다듬어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지역포괄케어시스템(地域包括ケアシステム) 인데 의료, 돌봄, 생활지원, 주거, 예방 서비스를 하나의 지역 단위에서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구조다. 노인이 살던 지역 안에서 가능한 한 오래,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으로서 지역포괄지원센터가 중심이 되어, 간호사, 사회복지사, 케어매니저가 협력하는 체계이며 병원 퇴원 후 재택 돌봄으로 연계되고, 생활지원과 예방 프로그램이 이어지므로 일본의 노인들은 병원과 시설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살던 곳에서 존엄하게 늙어갈 권리’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개호보험제도(介護保険制度) 역시 이용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데 보험료를 납부한 국민이라면, 일정 조건 하에 장기요양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이때 본인 부담금은 소득에 따라 조정된다. 저소득층은 거의 무료로 돌봄을 받으며, 고소득층은 일정 비율을 부담하는 시스템이며 복지용구 임대, 재택의료, 방문요양 등 서비스 선택 폭도 넓다. 또한 생활지원의 세부적 섬세함도 돋보이며 쓰레기 배출을 도와주는 서비스, 이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문앞 배달, 안전 점검, 심지어는 고독사 방지를 위한 정기 방문에 이르기까지 복지의 기본이 ‘생활’ 그 자체에 맞춰져 있다.

 

폐지줍기 — 한국 복지의 실패를 보여주는 거울

한국 사회에서 가장 뼈아픈 장면 중 하나는 바로 폐지를 줍는 노인의 모습이다. 새벽 어스름 속에서 리어카를 끌고 나와, 무게 100kg에 달하는 폐지를 모아도 하루 겨우 3천 원 남짓 손에 쥐게 된다. 폐지 단가는 시장 상황에 따라 쉽게 떨어지며,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지만, 그나마 유일한 현금 흐름이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폐지를 줍는 노인의 절반 이상이 월소득 30만 원 이하이며, 80%는 어떠한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한다. 기초연금으로는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고,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도 제외되기 일쑤다. 결국 거리에서 하는 이 노동은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생존 수단’이 된다. 이는 노년층 빈곤이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존엄의 붕괴라는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 세대가 평생 일하고 세금을 내며 살아왔지만, 그 결과가 폐지 수거라면, 이는 결코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책임과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배경에는 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의 정책적 선택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국가의 관심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집중되어 있었고, 복지정책은 거의 전무했다. 노인복지라는 개념 자체가 사회 전반에 자리 잡지 못했으며, 전통적인 유교문화 영향으로 노인은 가족이 부양해야 할 존재로 여겨졌다.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젊은 세대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동했고, 농촌에는 부양할 가족이 없는 노인들이 남게 되었다. 농촌의 고령화가 시작되었지만 정부는 이를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했고, 체계적인 대응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1970년대의 노인복지는 경제개발의 그늘 속에서 방치되었으며, 전통적 가족 부양 체계에 의존한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오늘날 폐지를 줍는 노인과 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이어진 것이다.

 

일본은 왜 폐지를 줍는 노인이 없을까

물론 일본에도 가난한 노인은 있지만 폐지를 줍는 노인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국가가 ‘최소한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생활보호제도(生活保護制度) 는 개인 단위 지원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자녀가 있어도 실질적 부양이 없으면, 노인 개인이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주거 보조, 의료비 면제, 식비 지원 등이 통합적으로 제공된다.

또한 시니어 임대주택(高齢者向け住宅) 과 실버하우징 제도가 있어, 소득이 낮은 노인은 공공임대주택에서 저렴한 임대료로 거주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 덕분에 주거 안정이 확보되니, 거리로 나갈 이유가 사라진다. 즉, 일본의 복지체계는 “노인이 거리에서 생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으며 그 구조의 핵심은 ‘국가의 책임’이다.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최소한의 삶을 직접 보장한다.

 

한국이 도입해야 할 방향

이제 한국도 복지의 목표를 바꿔야 한다. ‘도와주는 복지’가 아니라, ‘존엄을 지키는 복지’ 로 가야 한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 노인의 복지 수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며 행정상의 자녀 유무가 아니라, 실질적 부양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일본처럼 노인 개인이 독립된 복지 주체로 인정받아야 한다.

기초연금 및 기초생활보장 현실화: 기초연금 30만 원으로는 결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으며,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으로, ‘최저 생계비 + 주거비’를 보장하는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도 노인 단독가구 중심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지역 기반 통합돌봄 시스템 구축: 일본의 지역포괄케어 모델을 참고해 의료, 돌봄, 주거, 생활 지원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 한다. 더 이상 노인이 병원, 복지관, 요양시설 사이를 떠돌지 않고, 자신의 지역 안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노인 맞춤형 일자리 확대: 폐지수거 같은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노동이 아니라, 노인의 경험과 기술을 살린 사회참여형 일자리로 전환해야 한다. 일본의 실버인재센터처럼, 지역 환경관리, 돌봄 보조, 행정 지원 등 지역사회 기반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현재 일부 기업들은 임금피크제를 통해 정년을 연장하는 시스템을 운영중인 경우도 있지만, 이는 단지 정년을 연장하는 것일 뿐 인생의 1/3~1/4을 차지하는 노년기에는 이도 쉽지 않다.  일본의 경우 정년을 아예 폐지하거나 노동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업무를 지속하거나 일부 자동화와 함께 노인들도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통해 고질적인 인력난 해소와 함께 노인들의 생활의 리듬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보기도 한다.

주거 안정성 확보: 노인의 절반 이상은 주거비 부담으로 빈곤에 빠진다. 공공임대주택, 주거급여, 주택 개조 지원 등을 통해 ‘머물 수 있는 집’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이렇게 주거가 안정되면 건강, 돌봄, 관계망도. 함께 안정된다.

생활지원 서비스의 세분화: 쓰레기 배출, 식사 배달, 청소, 방문 안부 확인 같은 사소하지만 필수적인 서비스가 노인의 삶을 지탱한다. 지자체 단위의 생활지원 서비스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복지는 생색내기가 결코 아니며 사회가 구성원과 맺은 약속이다. 노인이 더 이상 폐지를 줍지 않아도 되는 나라… 그러한 바로 진짜 선진국이다. 지금 한국의 고령화는 위기이자 기회인데 일본은 이미 경험했고, 그. 길을 보여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 존엄을 기준으로 제도를 다시 짜는 것이며 그 출발점은 “거리에서 해방된 노년”이다.  더 이상 노년을 걱정하지 않고 생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여생을 걱정없이 보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https://www.kihasa.re.kr/api/kihasa/file/download%3Fseq%3D28258&ved=2ahUKEwiO67Tmg6KQAxVHsFYBHfR4Nv0QFnoECBgQAQ&usg=AOvVaw0P-gAS2Z30Vwm0tTPPNtpL
https://www.oecd.org/en/publications/pensions-at-a-glance-2023_678055dd-en.html
https://www.prism.go.kr/homepage/asmt/popup/1351000-202300128
https://www.mhlw.go.jp/stf/seisakunitsuite/bunya/hukushi_kaigo/kaigo_koureisha/chiiki-houkatsu/index.html
https://www.mhlw.go.jp/stf/seisakunitsuite/bunya/hukushi_kaigo/kaigo_koureisha/chiiki-houkatsu/index.html
https://www.kihasa.re.kr/publish/regular/hsw/view?seq=63385&volume=63373
https://www.pha.or.kr/journal/view.php?number=62&

이미지 저작권

https://kr.freepik.com/free-ai-image/cinematic-style-view-parent-child-spending-time-together_210181672.htm

Share This Story, Choose Your Platform!

About the author : admin

Get Social

카테고리

최신 댓글

    Tags